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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이주민’으로 돌봄 위기를 해결하려는 한국 사회, 그 이면을 들여다보다

by obusylife 2025.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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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한국 사회는 이주민 가사 돌봄 노동자 시범사업으로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겉으로는 인구 감소와 돌봄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처럼 보였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이주민을 값싼 노동력으로만 소비하려는 구조적 문제들이 드러났습니다.

정부는 필리핀 가사노동자를 들여와 주 30시간, 6개월짜리 근무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최소 노동시간조차 보장되지 않았고, 숙소 비용 등을 제하면 실수령액은 90만~130만 원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평균 118만 원, 사실상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송출국 기준 임금과 비교하며 “혜택”이라고 홍보했죠. 노동을 단순히 ‘저가’에 구입할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하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농촌의 ‘총각 장가보내기’에서 돌봄 노동까지

사실 한국 정부가 이주민을 통해 돌봄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1990년대 초 농촌 총각의 결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결혼이주 정책 역시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농촌에서 이미 무너진 재생산 구조―출산, 양육, 노인 돌봄, 가사노동―을 이주여성을 통해 메우려는 시도였습니다. 여성의 노동은 무급으로 가정경제에 동원되었고, 그 역할을 값싼 외부 자원으로 채워 넣는 방식이 이어진 것이죠.

산업 현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94년 산업연수생 제도, 그리고 2004년 고용허가제를 통해 E-9(비전문취업) 비자가 도입되면서 이주노동자는 대규모로 유입되었습니다. 이 비자의 최대 체류기간은 9년 8개월로 늘어났지만, 영주권 취득 요건인 10년에는 모자라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한국 사회에 영구 정주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돌봄 비용을 ‘이주화’하는 사회

E-9 비자를 받은 노동자는 가족을 한국에 데려올 권리가 없습니다. 자신을 돌봐줄 사람도, 본인이 돌봐야 할 가족도 동반할 수 없죠. 질병이나 노후로 인한 돌봄 비용을 한국 사회에 남기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막아둔 것입니다. 이렇게 이주노동자의 존재는 철저히 ‘노동력’으로만 관리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단순히 노동력으로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4년 10개월, 혹은 9년 8개월이라는 시간은 한 인간의 삶에서 짧지 않은 기간입니다. 그 안에서 이주민은 사랑을 하고, 관계를 맺고, 가족을 꾸리며, 아이를 낳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제도는 이들의 존재를 언제든 “불법”으로 만들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선택하지 않은 ‘불법’

1998년, 여섯 살이던 A는 엄마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중개인에게 속아 관광비자를 취업비자로 바꾸지 못하면서 둘은 곧 미등록 체류자가 되었습니다. A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신분번호가 없어 교육 시스템 속에서 끊임없이 제약을 겪었습니다. 휴대폰 개통조차 어려웠고, 친구들과 똑같이 봉사활동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A는 졸업이 다가오자 더 큰 벽에 부딪혔습니다. 12년 동안 한국에서 자라며 한국어로 교육받았지만, 체류 자격은 졸업과 동시에 사라졌습니다. 친구들이 대학과 진로를 이야기할 때 A는 “나만 다른 세계에 고립돼 있다”는 절망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조건부 체류와 ‘모범 시민’의 기준

2022년, 법무부는 장기체류 외국인 아동에게 조건부 체류자격을 주는 제도를 한시적으로 시행했습니다. 일정 기간 이상 체류하고 중·고교에 재학 중인 아동에게 졸업 후 1년의 유예기간을 주는 방식이었죠. 그러나 그 조건에는 ‘성실한 학업’, ‘법질서 준수’라는 단서가 달려 있었습니다. 마치 이주아동이 ‘모범적 시민’ 일 때만 체류 자격을 연장해 줄 수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문제는 현실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미등록 아동의 46.1%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고, 학업 중단 비율도 등록 아동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부모의 체류 불안정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체류 자격을 얻는 과정에서 부모에게 수백만 원에 달하는 범칙금이 부과되기도 합니다. 결국 돈이 없는 가족은 합법적 절차조차 밟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돌봄을 다시 묻는다

한국 사회는 인구소멸 지역, 저임금 노동 현장, 가정 내 무급노동의 공백을 이주민을 통해 메우고 있습니다. 그럴 때 이주민은 ‘필요한 존재’로 환영받습니다. 하지만 가족을 동반하거나, 미등록 상태로 생존을 모색하면 곧바로 ‘쫓아내야 할 존재’로 낙인찍히죠. 이 두 얼굴은 사실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결국 질문은 여기에 도달합니다.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된 사람들이 돌보고, 돌봄을 받는 이 현실에서, 한국 사회의 돌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말하는 ‘돌봄의 위기’는 정말 인력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일까요, 아니면 돌봄을 비용으로만 계산하는 사회의 구조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돌봄은 값싼 노동으로 외주화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공적 과제입니다. 이주민을 단순한 노동력으로만 바라보는 한, 한국 사회의 돌봄 위기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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