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농식품 수출 시장에서 이례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오랜 기간 일본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한국산 쌀이 2025년 상반기 일본으로의 수출량에서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는 것입니다. 한일 양국의 쌀 소비 트렌드와 시장 가격 변화, 그리고 글로벌 식량 수급 불안정성이 교차하면서 나타난 이 현상은 단순한 ‘수출 증가’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일본 수출 416톤, 전례 없는 기록
2025년 8월 4일, 일본 유력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자료를 인용해 올해 상반기 한국산 쌀이 일본으로 416톤(t) 수출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는 1990년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이후 최대 규모입니다.
이전까지 한국산 쌀의 일본 수출 최대치는 2012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구호물자 용도로 수출된 16톤에 불과했습니다. 더군다나 몇몇 해에는 수출량이 전무(0톤) 했을 정도로, 일본 내 한국산 쌀의 입지는 미미했습니다. 사실상 일본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무관심 품목’으로 여겨졌던 한국산 쌀이 이번에 극적인 반전을 이뤄낸 셈입니다.
가격이 만든 기회… 일본산 쌀값 폭등
이번 반전의 결정적인 배경에는 일본 내 쌀값의 급등이 있습니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2025년 5월 기준 일본의 쌀 평균 소매가격은 5㎏당 4,200엔(약 3만 9,371원)**으로, 전년도 대비 거의 두 배 가까이 오른 수준입니다.
이에 따라 일본 내 유통업체들과 소비자들은 보다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안정적인 수입산 쌀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한국산 쌀이었습니다.
실제 한국산 쌀은 **4㎏ 기준 4,000엔(약 3만7,498원)**에 일본에 수출되었고, 관세를 포함하고도 일본산보다 저렴했습니다. 가격 경쟁력에 힘입어 2025년 5월을 전후로 수출량이 급증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습니다.
소비 감소와 재고 문제, 수출로 방향 전환
한국산 쌀의 수출 확대는 단순히 일본 내 수요 증가 때문만은 아닙니다. 국내 쌀 소비량 감소가 중장기적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00년 93.6㎏에서 2024년 55.8㎏으로 40% 이상 감소했습니다. 이는 식생활 변화와 고령화, 외식 증가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반면 같은 기간 일본 역시 64.6㎏에서 51.5㎏으로 하락했지만, 한국의 감소 속도는 일본보다 훨씬 가팔랐습니다. 이는 국내 쌀 수급 불균형과 재고 과잉 문제를 심화시켰고, 자연스럽게 수출 시장 개척이 필요한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일본 수출 성과는 이러한 수급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셈이며, 국내 농업의 새로운 출구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품질 경쟁력 확보도 한몫
한국산 쌀이 일본 소비자에게 선택받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우수한 품질입니다. 한국은 고품질 쌀 품종 개발과 유통 관리 시스템 고도화에 지속적인 투자를 해왔으며, 농림축산식품부와 aT를 중심으로 수출 맞춤형 품질 관리와 포장 개선, 현지 마케팅까지 전략적으로 진행해 왔습니다.
특히 일본은 전통적으로 쌀 품질에 대한 기준이 매우 까다로운 나라입니다. 이처럼 까다로운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은 단순히 가격만이 아닌 품질 면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방증입니다.
향후 과제와 기회
한국산 쌀의 일본 수출 급증은 고무적이지만, 단기적인 수요 증가에 그치지 않도록 중장기 전략 마련이 필요합니다. 향후 일본 내 쌀 가격이 안정된다면,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수출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지속 가능한 수출용 품종 개발 및 생산 체계 마련
- 일본 현지 소비자 입맛에 맞춘 상품 다양화
- 유통 및 판매망 확보(온라인/오프라인 유통점 연계)
- 브랜드 이미지 강화 및 문화 콘텐츠 결합 마케팅
더불어 일본 외에도 대만, 홍콩, 동남아시아 등 한식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수출 시장을 다각화하는 전략도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쌀, 무대를 넓히다
과거 ‘수출 불가 품목’으로 여겨졌던 한국산 쌀이 일본이라는 세계 2위의 쌀 소비국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가격 요인을 넘어, 국내 농업 시스템의 변화, 소비 트렌드의 대응력, 그리고 품질 경쟁력의 결실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한국산 쌀은 더 이상 내수 시장에만 의존하는 시대를 벗어나 ‘글로벌 시장 개척’이라는 새로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 변화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농업과 수출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전환점을 만들어가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