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벌레는 이름 그대로 ‘대나무를 닮은 벌레’라는 뜻으로, 마치 마른 가지나 대나무 마디처럼 생긴 긴 몸체가 특징입니다. 몸 길고 가늘며, 보호색까지 갖추고 있어 일반적인 포식자들의 눈을 쉽게 피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자연 상태에서는 발견이 매우 어렵고, 주로 산림 깊숙한 곳에서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서식지는 한국을 포함해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이 주된 분포 지역이며, 외래종이 아닌 토종 곤충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접할 기회는 드물었기 때문에, 최근 갑작스러운 대량 출몰이 더욱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수도권에 나타난 대벌레… 왜 갑자기 많아졌을까?
최근 몇 년간 대벌레의 출몰 빈도와 범위는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서울 은평구를 시작으로 의왕, 군포, 하남, 인천 등 수도권 전역으로 퍼지고 있으며, 특히 산지와 접한 등산로나 보행로에서 많이 목격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의 주된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찾고 있습니다. 특히 봄철 기온 상승이 대벌레의 생식 활동을 크게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의 연구에 따르면, 고도가 낮고 온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대벌레의 알 부화율이 무려 6배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온이 높아지면 부화 환경이 적합해지고, 그만큼 개체 수도 급증하는 것입니다.
암컷 단독 번식 + 긴 산란기 = 걷잡을 수 없는 개체 수 증가
대벌레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의 번식 방식에 있습니다. 대벌레는 암컷 단독으로 번식이 가능하며, 한 마리의 암컷이 낳는 알의 수는 무려 700개에 달합니다. 여기에 산란 시기가 봄부터 가을까지 길게 유지되기 때문에, 개체 수는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대벌레는 천적이 나타나도 다리를 떼어내거나 죽은 척하는 등의 위장 능력이 뛰어나 생존율이 높습니다. 이처럼 생식력과 생존력이 모두 높은 특성은 대량 출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숲을 갉아먹는 대벌레,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대벌레는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그들의 먹이인 활엽수 잎, 특히 참나무류를 집중적으로 갉아먹기 때문에 산림 훼손이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0년 대벌레에 의한 산림 피해 면적은 19헥타르에 불과했으나, 2021년 158헥타르, 2022년에는 981헥타르로 3년 사이에 50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벌레 출몰 문제가 아닌, 생태계의 균형을 위협하는 심각한 환경 이슈로 번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특히 참나무류는 다양한 생물들이 의존하는 중요한 수종이기 때문에, 대벌레의 피해는 곤충, 조류, 포유류 등 다양한 생물 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화학약품 대신 친환경 방제로…정부의 대응책
대벌레의 급증에 따라 각 지자체와 정부도 방제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대벌레는 표적 식별이 어려워 화학 살충제를 사용하기에는 부작용 우려가 큽니다. 화학제의 잔류 성분은 다른 생물에게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끈끈이 롤트랩과 같은 물리적 방제 방법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리적 방제의 효과는 제한적이며, 오히려 비표적 곤충까지 붙잡아 생태계를 더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환경부와 국립생물자원관은 곰팡이균을 활용한 ‘친환경 생물학적 방제’ 방법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특히 ‘녹강균’이라는 곰팡이균이 대벌레 표피에 붙어 폐사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발견되었으며, 현재 실용화를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이는 대벌레만을 표적으로 삼아 생태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균형을 고민해야 할 때
기후변화는 이제 곤충의 생태마저 바꾸고 있습니다. 한때 보기 힘들었던 대벌레가 도시 인근 등산로에서 쉽게 관찰될 정도로 번식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산림 피해도 속수무책으로 늘고 있습니다. 단순히 보기 불편한 수준을 넘어, 생태계 교란과 산림 파괴로 이어지는 대벌레 문제는 단기적 대응만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화학 살충제가 아닌 생물학적 방제, 도시 녹지 관리 강화, 시민 인식 개선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기후위기의 현실을 마주하고, 보다 근본적인 기후 정책과 생태 보전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우리 주변의 작은 곤충 하나가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