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SAN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자연과 예술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많은 예술 애호가들에게 사랑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또 하나의 경이로운 공간이 문을 열었습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조각의 거장 안토니 곰리가 처음으로 협업한 장소 특정적 예술 공간 **‘GROUND’**가 그 주인공입니다.
공간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는 GROUND는 관람객의 감각, 사고, 존재 자체에 질문을 던지며 현대 예술의 본질을 다시금 일깨웁니다. 이번 블로그에서는 ‘GROUND’라는 특별한 공간이 가진 예술적 가치와 철학, 그리고 전시 전반의 매력을 전문 블로거의 시선으로 소개해 보겠습니다.
공간이 곧 메시지: 돔 속의 사색
‘GROUND’는 뮤지엄 SAN의 플라워 가든에 위치한 돔 형태의 공간으로, 내부 직경 25m, 천고 7.2m에 달하며, 정중앙에는 직경 2.4m의 원형 천창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기원전 27년 로마의 판테온을 연상케 하며, 판테온의 약 3/4 규모로 조성되었습니다.
하지만 고대 유적의 모사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공간은 철저히 **‘빛의 움직임’과 ‘자연의 변화’**에 주목한 설계로, 천창을 통해 스며드는 햇살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벽면과 조각을 다르게 비추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덕분에 GROUND는 시간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관람객은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됩니다.
또한 돔의 벽 너머로 펼쳐지는 원주의 울창한 산맥은 마치 동양화처럼 공간과 조화를 이루며, 실내와 실외의 경계마저 허물어뜨립니다.
인간을 말하는 철의 조각, 안토니 곰리
돔 내부에는 안토니 곰리의 철로 만든 인체 조각 7점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조각들은 녹슨 철의 색감을 그대로 살려, 자연 속에 놓인 인간의 육체를 상징합니다. 곰리는 철이라는 재료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철은 땅에서 왔고, 녹은 그 기원을 상기시킨다”며, 인간 존재의 물질성과 자연성과의 연결성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그는 이 공간을 **“소통을 위한 단절의 공간”**으로 정의합니다. 현대 사회의 빠른 속도와 정보 과잉 속에서, 잠시 멈춰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색의 돔’을 제안하는 것이죠. 반구 형태의 구조는 소리를 증폭시키는 특성을 지녀, 내부에서는 자신의 발걸음조차 존재감을 가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울림은 자신이 이 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인식을 더욱 뚜렷하게 합니다.
‘해석 없는 예술’, 관람객의 감각에 맡기다
‘GROUND’는 어떠한 설명이나 정답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곰리는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철학을 관람객에게 주입하려는 의도는 없다”며, 각자의 경험과 사유를 통해 작품의 의미를 찾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이런 철학은 다른 전시관에서도 이어집니다.
1관의 ‘Liminal Field’ 연작은 몸과 공간의 관계를 시각화한 7점의 인체 형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마치 거품처럼 가볍고 유동적인 조형이 ‘존재의 찰나’를 상기시킵니다.
**2관의 ‘Body and Soul’**에서는 인간의 감각과 의식의 깊이를 탐색하며,
**‘Lux’**에서는 빛과 어둠, 내부와 외부가 교차되는 모호한 지점에서 인간 존재의 경계를 탐색합니다.
우주의 일부가 되는 경험: Orbit Field II
가장 인상 깊은 전시는 단연 **3관의 ‘Orbit Field II’**입니다.
이 작품은 중력 궤도와 천체 운동을 연상시키는 스틸 원형 구조물 수십 개로 구성되며, 공간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갈수록 구조물이 더욱 촘촘해집니다. 관람객은 이 원형들 사이를 직접 걸어가며 자신이 우주의 일부가 되는 듯한 몰입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몸으로 예술을 경험하는 전시인 것입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물음
이번 전시는 단순히 조각이나 건축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 공간 안에서의 존재감을 느끼는 방식,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방식을 새롭게 각성시키는 전시입니다.
특히 안도 타다오의 미니멀하면서도 극적인 건축 언어와, 안토니 곰리의 인문학적 조형 철학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하나의 완성된 ‘묵상의 장’을 만들어냅니다.
이번 전시는 11월 30일까지 뮤지엄 SAN에서 상설로 운영되며, 개관일인 6월 20일에는 안토니 곰리의 특별 강연도 열려 예술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GROUND’는 그 자체로 하나의 명상 공간이자 감각의 실험실입니다. 시각적 아름다움, 건축적 정교함, 철학적 깊이를 모두 갖춘 이 공간은 현대 예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원주의 산과 하늘 아래, 돔 안에서 스스로와 조우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GROUND는 그저 ‘전시’ 이상의 의미를 품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발걸음이 울릴 때, 그 울림이 당신의 마음을 흔들기를.
원주의 GROUND에서, 예술은 말없이, 깊이 속삭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