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사회에서 뚜렷하게 감지되는 변화 중 하나는 '전쟁 개입'에 대한 인식입니다. 특히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미국이 이 분쟁에 직접 개입해야 하는가를 두고 여론이 확연히 갈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사안에 대해 가장 강경할 것처럼 보였던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층조차 과반이 미국의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입니다.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주는 미국 민심의 방향
지난 13일부터 16일까지,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0%가 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에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답했습니다. 찬성 의견은 고작 16%에 불과했습니다.
더 인상적인 부분은 지지자별 응답입니다. **트럼프 지지층 가운데 53%가 반대했고, 찬성은 19%**에 그쳤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 역시 비슷한 경향을 보였으며, 71%가 개입에 반대한다고 답해 초당적인 ‘개입 반대’ 정서가 미국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히 ‘반전 정서’로 보기 어려운 흐름입니다. 미국이 과거 중동 전쟁에서 겪은 장기화와 막대한 희생, 그리고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피로감이 누적된 결과로 보입니다. 이른바 “끝없는 전쟁”에 대한 학습 효과가 집단적 기억으로 자리잡은 셈입니다.
핵 협상에는 찬성 여론 우세…트럼프 지지자도 포함
또 다른 질문에서는 흥미로운 점이 드러납니다. “미국이 이란과 핵 협상을 재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56%가 찬성, 반대는 18%였습니다. 특히 트럼프 지지층의 63%도 협상 필요성에 동의했습니다.
이 결과는 중동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고자 하는 욕구가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는 과거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외쳤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립주의 노선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미국 내 자원과 안보는 미국 내에 집중돼야 하며, 외부 전쟁에 휘말리는 것은 손해라는 계산이 깔린 셈입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이견 표출…“의회 승인 없인 전쟁 없다”
정치권의 반응도 흥미롭습니다. 공화당 소속이면서도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미국이 자동적으로 가담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토머스 매시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전쟁 참여 전 반드시 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결의안을 발의했습니다. 그는 “이것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라는 말을 통해 미국이 자칫 타국의 분쟁에 끌려 들어가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같은 당의 팀 버쳇 의원 역시 “중동에서의 끝없는 전쟁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나이든 정치인들이 결정하고 젊은이들이 죽는 전쟁의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라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공화당 내에서도 전통적 매파와는 결이 다른 ‘신보수 고립주의자’들이 힘을 얻고 있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습니다.
갈라지는 보수층 내부의 시선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 지지층 내부에서도 고립주의자와 강경파 간의 갈등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부 강경파는 여전히 이란에 대한 강력한 제재 및 군사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고립주의를 지지하는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은 **“우리의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견은 향후 공화당 내부의 대외 정책 노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큽니다.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서 다시 집권을 노리는 상황에서, 이란 및 이스라엘 관련 사안은 미국의 외교 방향성 결정에 있어 핵심 쟁점이 될 것입니다.
미국은 '불개입'을 선택할까?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은 중동 지역의 불안을 다시금 세계적인 이슈로 끌어올렸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론조사는 미국 시민들이 더 이상 ‘세계 경찰’로서의 역할을 원하지 않으며, 중동 전쟁에 직접 끼어드는 것을 강하게 경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쟁은 단순히 군사적 문제를 넘어, 국민의 피로도와 경제,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는 거대한 리스크입니다. 미국민들이 이제는 '개입'보다 '자기중심적 균형 외교'를 더 원한다는 이 흐름은 향후 미국 외교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신호탄이 될 수 있습니다.
전쟁은 한순간의 선택이지만, 그 여파는 수십 년을 남긴다. 미국 국민은 지금, 그 무게를 아주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