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타이어는 단순히 도로 위를 달리는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수명을 다한 타이어는 매년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 개씩 버려져,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재활용이 까다롭고 소각이나 매립으로 이어지기 쉬운 폐타이어 문제에 대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 놀라운 해법을 제시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KAIST 화학과 홍순혁 교수 연구팀은 폐타이어를 고부가가치 화학 원료로 전환하는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고순도의 고리형 알켄(고리 모양의 탄화수소 화합물)으로 전환함으로써 화학 산업 전반에 큰 파급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성과입니다.
폐타이어는 왜 재활용이 어려울까?
폐타이어는 단순한 고무 덩어리가 아닙니다. 합성고무와 천연고무가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실리카, 카본블랙, 산화방지제 등 다양한 첨가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가황'이라는 화학적 처리 과정을 통해 고무 사슬 간에 가교 결합이 형성되면서, 매우 강한 내열성과 내구성을 갖게 됩니다. 이는 타이어의 수명을 늘리는 데 효과적이지만, 동시에 기존의 분해 및 재활용을 극도로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기존 재활용 방식으로는 주로 열분해나 물리적 분쇄 방식이 사용돼 왔습니다. 열분해는 350~800도의 고온에서 고분자 사슬을 분해해 연료유 등으로 전환하는 방식이지만, 지나치게 높은 에너지 소비와 함께 생성물이 불균일하고 품질이 낮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물리적 분쇄 또한 고부가가치 화학물질로의 전환과는 거리가 멉니다.
KAIST의 ‘이중 촉매 연속 반응 시스템’이란?
KAIST 연구팀은 기존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중 촉매 기반 연속 반응 시스템'을 고안했습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두 가지 촉매를 연속적으로 사용하는 점에 있습니다.
- 첫 번째 촉매는 폐고무 내의 고분자 결합 구조를 효과적으로 조절하여 분해가 용이한 형태로 바꿉니다.
- 두 번째 촉매는 이 분해된 고분자를 다시 ‘고리형 화합물’로 재구성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이중 단계 반응을 통해, 기존보다 훨씬 정제된 고순도 화합물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 얻어진 고리형 펜텐(pentene)과 헥센(hexene)은 산업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예를 들어 고리형 펜텐은 다시 고무 제조에 사용될 수 있으며, 고리형 헥센은 나일론 섬유 생산의 핵심 원료로 활용됩니다.
친환경성과 경제성까지 갖춘 기술
이번 KAIST 연구팀의 기술은 고순도 고리형 알켄 생산에 있어 최대 92%의 선택성과 82%의 수율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열분해 방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치입니다. 또한, 연구팀은 실험실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실제 폐타이어를 활용해 해당 기술의 효과를 입증하는 데에도 성공했습니다. 이 기술은 특정 종류의 고무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합성고무와 폐고무에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업적 활용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번 연구의 성과는 국제 저명 학술지 **‘Chem’**에 6월 18일 온라인 게재되며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화학기술의 진보
이번 연구를 주도한 홍순혁 교수는 “폐타이어의 화학적 재활용에 대한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는 경제성을 더욱 높이기 위한 고효율 차세대 촉매 개발과 상용화를 위한 기반 마련에 주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자원의 순환과 재활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타이어처럼 처리하기 까다롭고 환경적 부담이 큰 소재를 대상으로 한 이런 기술은 탄소중립 사회 실현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폐기물로 버려지던 타이어가 다시 고부가가치의 산업 원료로 재탄생하는 이 놀라운 기술은, 자원 순환형 경제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출처: KAIST 보도자료 및 학술지 ‘Ch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