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숲길을 따라 초겨울 특유의 맑고 투명한 날 호암미술관을 찾았다. 이번 방문의 가장 큰 목적은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전시였다. 이미 많은 매체를 통해 그녀의 조각, 특히 마망(Maman) 시리즈를 접한 적은 있었지만, 실제 작품과 그녀의 사적인 기록, 드로잉들을 한 공간에서 마주하는 경험은 언제나 책이나 사진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공기는 묘하게 차분하면서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작품 하나하나가 작가의 감정과 기억을 그대로 품고 있는 듯했고, 전체적으로 부르주아의 삶을 따라가는 일종의 심리적 여정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초기 드로잉과 직물 작업들이 빈틈없이 이어지지만 어딘가 불안정한 선들, 정교하지만 삐끗한 구조, 부드러운 천의 결 사이사이에 배어 있는 감정의 흔적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하나의 감정 기록물처럼 읽혔다. 마치 그녀의 마음이 종이와 실, 천에 그대로 눌러 찍힌 듯한 인상이었다.

전시를 이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녀가 평생 안고 살아온 감정의 층위가 드러난다. 유년기의 상처, 가족과의 관계, 불안,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스스로를 치유하려는 긴 여정. 특히 직물 작품들은 부르주아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핵심 요소였다. 그녀는 종종 ‘어머니’를 거미로 비유했는데, 그 이유는 거미가 집을 짓고 고치며 지키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상징은 그녀의 대표작 ‘마망’으로 이어지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마망의 원형 드로잉과 구조 모형, 스케치, 제작 과정의 자료 등 다양한 기록을 통해 작품의 내면을 더 깊이 읽을 수 있었다.


전시 중반부에서는 몸을 재조합한 형태의 조각 작품들이 깊은 여운을 남겼다. 매끄럽지 않은 표면, 비틀린 형태, 불완전해 보이는 구조는 오히려 인간의 본질적 감정에 가까웠다. ‘왜곡’이 아닌 ‘진실’에 더 가까운 형태랄까. 완벽하게 다듬어진 아름다움이 아닌, 감정의 상처와 흔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조형이기에, 작품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숨이 조금 느려지고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저 아름다운 작품 감상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게 만드는 경험이었다.


마망을 실제 크기로 마주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정신적 밀도는 그대로 전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거대한 거미는 단순히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동시에 작가에게는 보호자, 상처의 기억, 그리고 상반된 감정이 얽힌 존재였다. 전시장에 놓여 있던 드로잉 속의 거미들은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부드러우며, 때로는 작가의 불안을 가만히 껴안아주는 듯 묘하게 따뜻한 느낌마저 주었다. 이 복합적인 감정의 층위가 부르주아의 작품을 독특하게 만드는 매력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전체적으로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본다’는 느낌이 아니라, 한 인간의 내면을 천천히 걸어가는 여정과도 같았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뭉클하고, 때로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묵직한 순간이 이어졌다. 전시를 다 둘러보고 미술관 밖으로 나오는 길, 차가운 초겨울 공기가 유난히 맑게 느껴졌다. 그만큼 감정의 흐름이 가볍게 정리된 느낌이었다.